고린도후서 12장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요한복음 15장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의 고난 앞에 우리의 신앙을 다시 정검하고 다잡는 구별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약함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았습니다. 그가 한 개 부족한 태형을 세 번 맞고, 성 밖으로 버려진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감옥에 갇혀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라는 것을 알았던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육체의 질병으로 인해 하나님께 세 번 간곡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다시 받아들였습니다.
약함으로 인한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신할 수 있는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더 바라지 않았습니다. 약함의 고통을 끌어 안고, 살아있는 동안 그 고통과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주님의 친구가 되려면, 주님이 우릴 위해 죽으신 것 같이, 우리가 친구를 위해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과연 그 사랑은 어떤 것일까요?
사도 바울이 하나님 앞에 교만해지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약함을 감사함으로 끌어 안는 것, 그것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려 놓는 것 만큼의 자기 비움이 있어야 합니다. 인생 가운데 여러분을 주저앉히고 무너뜨리는 약함이 무엇입니까?
저에게도 그런 아픔이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누구에게는 수치가 될 수 있고, 자신의 큰 실수였을 수 있고,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가족일수도 있습니다. 때론 피해자로 혹은 가해자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연약함으로 성도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친구되신 주님께서는 우리가 포기할 때 중보자 되셔서 우리를 이끌어 주실것입니다. 우리가 약함에 처할 때 가장 강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로 밖에는 설명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또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주를 따르는 동안, 약함의 고통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소서. 그 약함을 해결해 주시길 바라기보다 그것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몰락의 순간에 겸손함과 약함 그대로 주님 앞으로 갈 수 있게 하소서. 주만 바라보고 서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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