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항 교수님의 잔잔하면서 꼼꼼한 필체가 언제나 좋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시편 기도문은 마음을 순하게 만든다.
히브러어는 아~~~어렵지만ㅠㅠ... 읽어주시는 히브리어는 참 멋지고 아름다운 언어로 느껴진다. 고대 히브리 고대사에 바탕을 둔 사무엘서의 이야기에서 맞추어지지 않은 조각들을 이어주는『역사와 파편Ⅰ』 중, 일곱 번재 이야기 사울의 나체 예언이다.

사무엘서에서 사울이 예언을 하는 장면은 두 번 나온다. 처음은 사무엘이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사울이 사무엘 앞에서 떠나려 할 때이고 두 번째는 다윗을 죽이려 던 사울이 옷을 벗고 예언을 하는 장면이다. 본서의 7장에서 이 부분을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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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의 끝을 주머니에서 언제까지 숨길 수 없는 것처럼, 사람됨은 언젠가 드러나게 마련이고
역사에는 평가라는 것이 있어서 자취를 남기기 마련이다.
사울이 옷을 벗는 장면은 자신의 본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요.
자기도 모르던 험악한 속내가 벗겨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왕복으로 감싸고 있던 탐심이 드러나는 순간이요. 불그레한 속내가 온 천하에 공개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울이 옷을 벗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사울에 앞서 옷을 벗은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사울이 건네준 투구와 갑옷을 벗어버렸다(삼상 17:39). 그러나 이때 다윗은 자발적으로 벗은 것이요,
자신의 분수를 아는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행위였다.
그다음으로 옷을 벗은 이는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었다. 그도 스스로 옷을 벗었다(삼상 18:4).
스스로 옷을 벗은 두 사람은 의인이 되었고 타의에 의해 옷이 벗겨짐을 당한 사울은 비참한 죄인으로 죽었다.
스스로 옷을 벗을 줄 아는 사람은 남에 의해서 험한 꼴을 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울이 옷을 벗는 장면은 한 인간이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고 집착할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그 일면을 잘 드러내 준다.
『역사와 파편 조각하나』 이야기 일곱, 사울의 나체 예언.
책의 저자(엄태항 교수)는 본문의 내러티브를 잘 관찰한 부르그만의 이야기를 지지한다. 두 번 나오는 사울이 예언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 통치자가 하나님의 영에 붙들린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왕의 권력이 아닌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자로 살아야 한다. 백성을 통치하는 힘은 성령의 두루마기를 입은 자이다. 만약 인간 왕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고, 획득한 왕의 힘을 사용하려 할 때, 하나님은 그의 옷을 벗길 수 있다. 사울은 그의 옷이 벗겨졌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입는 권력의 옷을 옳지 않아 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성령의 두루마리를 입기를 원하신다. 저자는 여기서 지금의 교회가 하나님이 아닌 권력의 두루마리로 힘을 행사하려 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벗겨버릴 수도 있다는 역사의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만약 사울이 과거에 자신이 처음으로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여 예언했었던 걸 기억했더라면...이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일상에서 아주 소소한 일들을 통해 눈치채야 한다. 알아차림... 중요하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고난을 보며, 불을 쪼이며 여종에게 주를 세 번 부인하고 저주했다. 그리고 디베랴 호수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은 숯불에 생선과 떡을 굽고 계셨다. 피어오르는 숯불을 가운데 두고 예수님과 베드로는 서로의 눈이 마주쳤던 배신의 순간을 기억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베드로는 똑같이 세 번 들려오는 물음에 그날의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넘어 사랑을 고백한다. 바닷가에 스스로 꺼져가는 숯불처럼, 그날 불을 피우던 뜰에서 주를 부인했던 것처럼, 다시는 주를 향한 가슴속 사랑을 꺼뜨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처음 왕 사울은 두 번째 예언의 날에 하나님이 주신 경고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가 나체가 되어 종일 누워있었던 것처럼, 그는 왕의 옷이 벗겨지고, 투구가 떨어지고, 차고 있던 칼은 자신을 찌르는 무기가 되는 무력한 왕으로 생을 마쳤다.
히브리 역사가에게 있어서
왕은 힘의 전달자이지 권력이 아니다.
그 신적인 힘은
야훼로부터 부여된 권위에서 나온다.
『역사와 파편 조각하나』
이야기 일곱, 사울의 나체 예언. 216.
'힘의 전달자'의 '힘'은 내 것이 아니다.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고 집착한 최후는 강제로 옷이 벗겨지는 수치이다. 사울은 두 번째 예언을 하며 옷이 벗겨지고, 쓰러져 있었다. 이는 단순히 누워 있는 것이 아나라 사울이 생각하고 있던 모든 권력이 벗겨지고, 꼬꾸라져서 자신의 비참한 죽음을 예언하는 몸짓이었다.
이 새벽 생각해 본다......
성경 본문
첫 번째 예언, 사무엘상 10:9~11(새번역)
9 사울이 사무엘에게서 떠나려고 몸을 돌이켰을 때에, 하나님이 사울에게 새 마음을 주셨다. 그리고 사무엘이 말한 그 모든 증거들이 그 날로 다 나타났다.
10 사울이 종과 함께 산에 이르자, 예언자의 무리가 그를 맞아 주었다. 그때에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세차게 내리니, 사울이 그들과 함께, 춤추며 소리를 지르면서 예언을 하였다.
11 이전부터 그를 알던 모든 사람들이 보니, 사울이 과연 예언자들과 함께 그렇게 예언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들이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사울이 예언자가 되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두 번째 예언, 사무엘상 19:19~24(새번역)
19 다윗이 라마의 나욧에 있다는 소식이 곧 사울에게 들어갔다.
20 사울은 다윗을 잡아 오라고 부하들을 보냈다. 그들이 가서 보니, 예언자들 한 무리가 사무엘 앞에서 춤추고 소리치며, 예언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 부하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내리니, 그들도 춤추고 소리치며, 예언을 하였다.
21 사람들이 사울에게 이 소식을 알리니, 사울이 다른 부하들을 보냈으나, 그들도 춤추고 소리치면서, 예언을 하는 것이었다. 사울이 다시 세 번째로 부하들을 보내니, 그들도, 마찬가지로 춤추고 소리치면서, 예언을 하였다.
22 드디어 사울이 직접 라마로 갔다. 그는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이르러,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이 라마의 나욧에 있다고 대답하였다.
23 사울이 거기에서 라마의 나욧으로 가는데, 그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내려서, 그는 라마의 나욧에 이를 때까지 계속하여 춤추고 소리치며, 열광 상태에서 예언을 하며 걸어갔다.
24 사무엘 앞에 이르러서는, 옷까지 벗어 버리고 춤추고 소리치면서 예언을 하고 나서, 그날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쓰러져 있었다. (“사울도 예언자가 되었는가?” 하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단어연구
* 사울이 옷을 '벗어'에 사용된 히브리어(파사트)는 '벗기다', '노략하다', '돌진하다'의 의미로 군사적인 용어로 많이 사용되었다. 단순히 탈의하다가 아닌 직위를 해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창세기에서 야곱의 아들들이 그의 형제 요셉을 죽이려고 그의 채색옷을 벗길때 사용되었다(창37:23)

* 본문의 '사울이 누워서 옷을 벗고 예언하다'에서 '누워서'(나팔)는 사울이 '넘어졌다', 혹은 '쓰러졌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단순히 누워있는 것이 아닌 전쟁에 사용하던 단어로서 군인들이 적에게 공격을 당해 죽어서 넘어질때 자주 쓰는 단어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릴 때에도 이 단어가 쓰였다. 이렇듯 불길함을 암시하는 단어는 실재 사울이 마지막 숨을 거둘때 사용된다(31:8).
